top of page

복야공사적 (僕射公事蹟)

복야공(僕射公) 휘(諱) 수홍(守洪)

복야공(僕射公)은 보승별장호장중윤(保勝別將戶長中允)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를 증직(贈職) 받은 중시(仲時)의 차남으로 관직은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상서좌복야(尙書佐僕射)에 상장군(上將軍)을 겸하였다. 공이 조정에 출사한 이후 한평생 내란과 몽고의 침략으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국가를 구하고자 안으로는 현상(賢相)이며 밖으로는 명장(名將)의 역할을 다 했으리라 보여 진다. 공의 품계인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는 고려의 문물제도가 완비되는 문종 때 정3품의 위계였으나 공민왕 때에는 정2품이었으므로 상서좌복야(尙書佐僕射)의 관직과 일치한다. 좌복야(左僕射)란 벼슬은 각 왕조별로 그 역할과 권한이 다르게 변천하였으나 당, 오대, 송나라 시대에는 상서성에 속하여 문하성의 장인 문하시중(門下侍中)을 겸임하여 명실공이 좌복야(左僕射)가 곧 좌승상(佐丞相)으로 재상이었다. 당시에는 복야(僕射)가 재상(宰相)이란 뜻으로 쓰였고 고려의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는 정2품이었다. 공의 추밀원부사직(樞密院副使職)은 정3품 관직의 장관급으로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宿衛), 군사기밀 등을 맡아보았다. 공의 독자(獨子)인 자여(子輿)는 관직이 종1품 금자광녹대부(金紫光祿大夫)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병부상서(兵部尙書)였다. 손자로 척의 관직은 종1품 금자광녹대부(金紫光祿大夫) 첨의평리(僉議評理)이고, 윤평(允平)은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증직되었고, 윤보(允保)는 중문지후(中門祗侯)였고, 조여(祖如)는 정1품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으며, ?(빈)은 중문지후(中門祗侯)를 지냈다.

공의 후손이 번성하여 이제 수십만을 헤아리고 경향각지와 해외에까지 번창한데도 공의 묘소를 실전하여 제향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1994년(甲戌) 후손들이 뜻과 정성을 모아 시조 태사공의 묘소에서 멀지 않은 곳인 공의 5세손 판서공(判書公) 인(靷)의 묘역과 가까운 송야산(松夜山)에 설단(設壇)하여 4월 5일(음2월 25일) 청명 한식일에 준공고유 및 신도비 제막식을 가졌다. 신도비각(神道碑閣)은 2004년(甲申) 11월 13일에 준공고유제를 봉행하였다.

지파종중

안동권씨복야공파종회관(安東權氏僕射公派宗會館)

주 소 : 경북 안동시 태화동 666-26 
전 화 : 054-855-6989 팩 스 : 054-855-6989 
수석부회장 : 권세원(權世源) 총 무 : 권오익(權五翼)

bottom of page